3.1절 100주년 '항거:유관순이야기','1919유관순'

독립하라 한국영화

 

극한직업이 대박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초 대박이다. 정확하게 얼마의 제작비가 들어갔는지 모르나, '명량'보다 적게 들었을 거다. 근데 극장 관객 수가 대등해지고 있다. 1,700만여 명이라는 수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상태라면 '명량'의 아성을 뛰어 넘을 것 같다. 국내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화 하고 있는 스크린 쿼터가 무색하다.

 

 

 

(출처=> https://www.together100.go.kr/lay2/S1T9C38/contents.do)

 

 

 

꼬리를 물다

 

 

영화 한 편이 놀라운 수익을 얻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한직업'은 지난 1일자로 1,35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한국영화 역대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는 '명량'의 1,357억원을 뛰어 넘었다. 역대 최고의 매출 달성이다. 본 포스팅 작성 일자를 고려해 보면 수치는 더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3월1일은 1919년 3월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의 '극한직업'은 역대 최고 흥행 수익을 올리며 '명량'을 뛰어 넘었다. '대한독립만세'가 3.1절 100주년이 영화 판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출처=네이버 영화 '1919유관순')

 

 

역사적 사실

 

 

'극한직업'의 흥행 돌풍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을 뛰어 넘은 날,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를 다룬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아픈 역사 속에서 민족의식을 깨우치게 했던 어린 소녀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날이다. 우리는 이 날을 3.1절로 기념하고 있으며, 유관순 열사를 교과서에서 배워왔다. 이름으로 들었고, 일제 식민지에 맞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위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던 것일까? 3평도 안되는 서대문형무소 감옥 8호실에 갇힌 뒷 이야기에 눈물이 난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현실적 역사

 

 

일본은 35년간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고, 민족의 역사를 지우려했다. 독립을 외쳤던 운동가를 핍박했으며, 침략을 위한 전쟁에 한반도를 기지로 삼았다. 우리의 선조들은 강압 속에서 전투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 아픈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유관순 열사'다. 17세 어린 나이에 민족의식을 깨우친 위인. 우리는 그녀를 유관순 누나, 유관순 언니라 불렀다. 1919년 3월1일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가 3평도 안되는 좁은 감옥에서 겪은 1년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항거:유관순이야기'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3.1독립선언서)

 

 

독립 선언서

 

 

33인의 3.1독립선언서, 2,000만 민족의 외침을 대표하다

 

3.1운동은 200만 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국민의 10분의 1이 참여했던 민중의 외침이었다. 10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2019년 3월1일은 100년 전 33인이 대표했던 독립선언문을 돌아보게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순국하셨던 독립운동가들을 그리게 했다. 그 중 한 분이 바로 유관순 열사다. 3.1운동 1주년을 맞이했던 1920년 서대문 형무소 감옥 8호실. 유관순 열사가 독립선언서를 외친다. 그리고 대한독립만세가 울린다. 그 울림의 시작은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선조들의 외침으로 퍼졌다. 결국 그 울림의 끝은 유관순 열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나, 3.1운동의 정신을 숭고하게 만들었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잊지 말아요

 

 

1919년 4월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날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역사를 짓밟은 일본 군대를 피해 중국 상해에 자리하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이 발판의 시작이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그래서 우리는 3.1 운동을 대표하는 누군가의 외침을 잊어선 안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시작은 100년 전 200만 명의 외침에서 비롯되었고, 2,000만 명의 국민에서 뿌리 내렸다. 그 중심에 국민의 한 사람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점 하나를 찍었던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진짜 애국심

 

3.1절을 상징하는 위인은 유관순 열사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재미있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고 했을 때 이 영화는 봐야 하는 것일까? 극한직업 처럼 웃기지도 없고, 캡틴마블처럼 특출난 능력도 없다. 더구나 칼라풀 하지 않고, 흑백이면서 '동주'처럼 시적인 감성도 없다. 순수하게  3.1절을 숭고하게 하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짚어 보게 하는 영화다. 그래서 우리는 유관순 영화를 봐야 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유관순 열사

 

 

온전히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포스팅 창을 띄우는 순간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 지 막막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적으려니 어떻게 적어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2019년 가장 핫한 영화 극한직업을 이야기 해야할까? 히어로 시리즈로 주목 받는 마블 영화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갈등의 꼬리가 길기만 했다. 그래서 생각나는대로 주절주절 적기 시작했고, 본 블로그 명과 잘 어울리는 독립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가지 자료를 찾던 중 흥미로운 글을 보게 되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선조들의 신앙심과 애국심으로 지켜졌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선조들의 피 흘림과 희생 위에 세워졌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부모 형제를 지키고, 대한민국을 세우는 것이 자유와 평화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우는 길이기에 그러하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하나님 나라의 목사이기에 더더욱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으나 기독교인은 국경이 있다. 예수님도 바울도 하나님 나라와 유대 나라를 사랑했다. 신앙심은 애국심이다." (발췌: https://blog.naver.com/bsjhe587/70092829388)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190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육 활동을 하는 계몽 운동가였다. 그리고 열네 살이 되던 해인 1916년, 그녀의 첫 스승인 사애리시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사립 여자 학교인 이화 학당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평소 잔 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1일 서울 도심에서 많은 군중들이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관순 열사도 이화 학당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여러 날이 계속되면서 만세 운동이 확산되자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화 학당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유관순 열사는 천안으로 러 온 후 마을 지도자인 조인원 등과 함께 아우내 장날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마침내 4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나라를 되찾아 독립을 이루자'는 내용의 연설을 한 뒤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나섰다. 일본 헌병과 경찰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 군중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부모는 헌병의 총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고, 그녀 역시 주동자로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 재판을 받는 동안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만세 시위의 정당함을 주장해 징역 3년 형을 받았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독립 운동가

 

항거:유관순이야기, 그리고 여성 독립운동가

 

 

근 현대사 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 이야기를 다룬 '항거:유관순이야기'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서대문 형무소 감옥 8호실에는 기도교인이 된 개성의 전도부인 어윤희, 호수돈 여고 사감 출신 신관빈, 시각장애인 독립투사 심명철,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등 개성 출신 수감자들과 수원 기생조합 김향화, 세브란스 간호사 노순경, 만삭 임신부로 옥중에 아이를 출산하고도 독립운동을 했던 파주 출신 구세군 사령 부인 임명애 등 실제 수감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등장한다.

 

감옥 8호실은 서 있기도 벅찰 정도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갇혀있다. 다리가 저려 오면 좁은 공간에서 동그랗게 걷는 장면은 애통하다. 근 현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500년 전 조선 건립에 등장했던 조상과 다르게 느껴지는 인물들이다. 불과 100년 전 이야기는 우리의 증조모이기 때문에 체감이 다르다. 그래서 진짜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역사 속 감옥 8호실이 할머니들의 따뜻한 정까지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도 정 많은 할머니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 장면으로 빨래를 하는 노역에서 감옥으로 돌아온 장면이 있다. 빨래 노역은 만세 1주년을 알아내기 위한 지혜였는데 노역 중 감옥으로 온 후 '만세 1주년인데 빨래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라고 말하는 장면은 해맑은 소녀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를 평론적 시선으로 보면 고아성이라는 배우의 페르소나를 추가할 수 있겠으나, 일단 영화에 대한 평론적 잣대는 배제하겠다.

 

아무튼 이 장면은 사람 사는 공간에서 따뜻함을 준다. 그리고 외친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떳떳하게 외쳐라' 서대문 형무소에서 퍼져 나간 '대한독립만세'. 가장 울컥하게 했던 장면이자, 잊지 말아야 역사다. 이는 시제 서대문 형무소 안에서도 유관순 열사는 만세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결국 열아홉 살에 감옥 안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영화의 독립

 

블로그를 '독립하라 한국영화'로 정할 때 나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관람하길 희망했다. 한국 영화는 돈 주고 보기 아까워. 외국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해.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나는 한국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비꼬았다. 심지어 토렌트로 받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p2p 기술이 좋아졌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도 늘어났다. VOD서비스가 시작되면 5GB 이상의 고화질 용량을 다운 받는 것도 10분 내외로 받을 수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다. 연령층이 낮아질 수록 공유 사이트 사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극장에서 보는 것은 영화가 상업화 되면서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티켓 가격은 3년 전보다 비싸다. 그리고 10년 전 가격의 2배다. 조조를 가야 10년 전 가격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만큼 영화 시장은 산업화 되었고, 대중이 보는 영화는 상업화 되었다. 그래서 영화적 가치가 20년 전과 달라졌다.

 

 

영화에 대한 실험 정신은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 들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영화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는 실험과 도전 정신을 시작해야 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명량')

 

 

 

상업적 성공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은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린다. 화려한 전투 씬에 대한 찬사와 이순신 장군을 등에 업은 영화라 말한다. 평이야 어찌되었든 상업적 결과는 거대한 성공이었다. 그리고 이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극한직업'은 '명량'보다 적은 제작비로 거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 대만 박스오피스에서도 1위를 했다고 하니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중이다. 두 작품을 봤을 때 한국 영화는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의리적 구투

 

지금으로 부터 100년 전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투'가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1919년 10월27일이었다.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장면이나 활극장면을 영화로 찍어 연극과 연극 사이, 무대 위의 스크린에 삽입함으로써 영화와 연극이 연쇄되어 줄거리를 이어가는 형식의 연극이 연출된 것이다. 지금 이 연쇄극을 언급하는 이유는 '의리적 구투'에 삽입된 필름이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최초의 한국영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영화라 할 수 있는 '경성시가의 경'이 동시에 상영되었다는 점에서 1919년10월27일 한국 영화의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이다. 물론 당시 촬영 기사는 일본이었으나, 우라나라 사람이 출자하고 구상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 영화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이다.

 

 

 

영화 아리랑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영화에 종사했던 인물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을까? 친일을 했던 인물들은 아니었을까? 100년 전 한반도에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친일이 존재했던 시대였기에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배우가 있다. '나운규' 함경도 출신인 그는 만주의 홍범도 장군 휘하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검거돼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석방된 후 부산에서 '조건 키네마'영화사의 연구생이 되었다. 1926년 직접 각본, 감독, 주연한 영화 '아리랑'이 제작되었는데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영상화하면서 한국 영화의 진정한 효시로 평가 받는다. 리얼리즘을 기초로 일제에 억눌리던 민족의 울분을 영화로 승화 시키면서 1993년 8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사람 유관순

 

영화는 '극한직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 포스팅의 시발점은 '항거:유관순이야기'였다.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이 깊어 지면서 글의 흐름은 긴 사설로 넘어갔다. 하지만 논점은 100주년에 대한 의의다. 흥행을 목적으로 했던 최초의 한국영화는 지금으로 부터 100년 전 시작되었고, 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3월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삼일절이 100주년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여성 독립운동가 중심에 유관순 열사가 있다.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출처=네이버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 시대적 리얼리즘을 더하기 위해 흑백 영상을 사용했으며, 그녀의 과거 씬은 칼라로 등장한다. 감옥이라는 어두운 현실과 반대로 과거를 칼라로 사용하면서 만세운동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특히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배우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의 내면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역사적 사건을 현실화 하고,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실체화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관람하면서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조금 더 감성적이면서 인간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출처=네이버 영화 '1919유관순')

 

 

영화 유관순

 

 

그렇다면 이와 동일한 내용으로 나오는 영화는 어떨까? 3월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1919유관순'이다.

 

 

 

 

(출처=네이버 영화 '1919유관순')

 

 

다큐멘터리 '1919유관순'

 

 

이 영화는 기록물이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식 후원작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기반에 두고 있는 기록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유관순 역에 이새봄, 어윤희 역에 양윤희, 권애라 역에 김나니, 김향화 역에 박자희, 규리 역에 김규리, 심명철 역에 김뮤늬, 노순경 역에 휴의도, 신관빈 역에 장세아, 임명애 역에 황도원, 이신애 역에 문보람, 동풍신 역에 나애진 등이 출연한다. 배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배우의 연기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어떤 연기가 펼쳐질 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여기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감성을 배제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기록물로써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객관적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통 이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픽션과 팩션을 선호하는 관객들이 흥미롭게 보기엔 힘들다. 그래서 국내 영화 상영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임시정부수립과 3.1절 100주년을 맞은 2019년. 대한독립만세가 극장가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영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보는가가 영화의 완성이다.